물건 속 기억

기록으로 먼 기구의 독립을 돕다,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박사

기록하지 않은 역사는 기억에서 사라집니다. 일제강점기, 6·25전쟁 등과 같은 가슴 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역사를 기록하는 게 중요합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기록의 힘을 보여준 이가 있는데요. 먼 이국에서 와 한국의 역사적 모습을 기록하여 독립운동을 도왔던 캐나다인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박사를 소개합니다. 3·1운동을 담은 유일한 기록. 스코필드 박사(1889~1970)는 세브란스의학전문학 교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독립운동가였던 이갑성이 스코필드 박사를 찾아와 3월 1일에 독립선언식과 만세 시위가 일어날 것임을 알려주며 협력을 요청했어요. 스코필드 박사 는 이에 흔쾌히 응하며 독립선언문을 영어로 번역하 여 미국에 보내는 것은 물론, 외국의 신문과 잡지를 찾아보고 이갑성에게 국제 정세를 알려주었어요. 3·1운동 당시에도 사진기를 들고 현장을 다니며 독 립을 외치는 우리 민족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그리 고 자신이 눈으로 본 장면을 타자기로 써 내려갔지 요. 타자기로 남긴 기록만 원고지 298장에 달했습니 다. 2016년 스코필드 박사 내한 100주년 기념사업 회에서 실제로 스코필드 박사가 작성했던 원본 자료 가 공개됐어요. 자료에는 만세운동 당시 시위 행렬 의 모습, 고문당하는 한국인을 치료한 이야기 등이 담겨 있어요. 국민은 분의에 항거해야만 하고 목숨을 버려야만 할 때가 있다. 그럼으로써 일종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되고 광명을 되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일제의 탄압을 기록해 세계에 알리다. 3·1운동 이후에도 스코필드 박사는 독립운동을 돕는 한편 일제의 만행을 널리 알리기 위한 기록을 멈추 지 않았어요. 1919년 4월에 일어난 제암리와 수촌리 학살 사건 당시에도 스코필드 박사는 현장을 찾아 가 사진을 찍고 「제암리의 대학살(The Massacre of Chai-Amm-Ni)」과 「수촌 만행* 보고서」라는 보고서 를 남겼습니다. 제암리 사건을 담은 보고서는 중국 상하이에서 발행되는 영자신문에, 수촌리 사건을 담 은 보고서는 미국의 장로회 기관지에 보도되었어요. 이외에도 일본과 캐나다 등 해외에서도 강연과 언론 기고를 통해 일제의 탄압과 한국의 독립을 알리기 위해 힘썼습니다. 타자기는 이러한 스코필드 박사와 늘 함께했습니다. 스코필드 박사는 암울한 상황 속 에서도 민족의식을 잃지 않고 저항하는 한국인들을 ‘꺼지지 않는 불꽃’이라 생각했다고 해요. 언론을 이 용해 우리나라의 상황을 외국에 알린 스코필드 박사 의 노력 덕분에 우리는 과거의 일을 생생히 기억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기록은 사실을 객관적으로 밝 히고 후대에 전달하는 힘을 갖고 있어요. 타자기는 오늘날의 키보드처럼 손으로 하는 문서 작성을 대신 해 준 도구였어요. 스코필드기념관에 가면 그가 활 동했던 당시 글 쓰는 사람들이 많이 사용했던 타자 기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독립에 앞장 선 스코필드 박사를 기념하며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길러보는 건 어떨까요? 이국. 무노하나 풍속 등이 다른 나라. 항거. 순종하지 않고 맞서서 반항함. 광명. 밝은 미래나 희망을 상징하는 밝고 환한 빛. 정세. 일이 되어가는 형편. 만행. 야만스러운 행위. 스코필드기념관.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35-40. 교과 연계 추천 활동. 사회 6학년 1학기 3단원. 나라를 되찾기 위한 노력. 내가 이 시대에 살았다면 어떤 방법으로 독립운동을 했을지 자신의 생각을 발표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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