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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이 지닌 그날의 역사

덕수궁이 지닌 그날의 역사. 높은 빌딩들 사이에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덕수궁은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현재를 살아가는 덕수구으이 자취를 함께 따라가 볼까요? 임진왜란을 극복한 곳, 광해군과 인조가 왕위에 오른 곳, 왕들의 어진이 보관되어 있는 역사적 의미가 이어져 온 덕수궁은, 조선시대의 궁궐로서 원래 경운궁(후에 덕수궁)이라 불렸습니다. 1897년 2월, 을미사변 이후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던 고종이 경운궁으로 거처를 옮기게 됩니다. 고종은 그 해 10월 12일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의 자리에 올 랐습니다. 이로써 경운궁은 대한제국의 황궁이 되었습 니다. 하지만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1907년 고종이 강 제로 퇴위당하면서 궁의 칭호도 덕수궁으로 바뀌었습 니다. 1919년 1월, 고종이 세상을 떠나자 일본은 덕수궁에 있는 여러 전각을 헐어버리거나 모습과 용도를 바꾸 며 궁궐의 형태를 잃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일제에 의해 파괴되고 고통받은 덕수궁은 또 한 번의 위기를 겪게 됩니다. 6·25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역전되고, 서울에 있던 북한군 병력은 한 곳으로 집결되는데, 그곳이 바로 덕수궁이었습니다. 북한군을 한 번에 없앨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생긴 것이죠. 당시 전쟁을 지휘한 맥아더 장군은 UN군의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된 포병부대 제임스 해밀턴 딜 중위에게 덕수궁 폭파를 명령합니다. 제임스 해밀턴 딜 중위는 상부의 지시와 한 국가의 사적 보존 사이에 서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수백 년의 역사를 담은 덕수궁을 사라지게 할 수 없었던 제임스 해밀턴 딜 중위는 상관을 설득해 작전을 바꾸게 합니다. 미군은 북한군이 덕수궁을 벗어날 때까지 어떠한 공격도 하지 않고 기다린 후 공격을 실행했습니다. 이날 제임스 해밀턴 딜 중위가 덕수궁에 포격을 명령했다면 우리는 지금의 덕수궁을 만날 수 없었을 겁니다. 덕수궁 석조전은 6·25전쟁 이후 국립박물관, 국립현 대미술관, 궁중유물전시관으로 사용되며 역사적인 변화를 겪은 장소가 되었습니다. 이후 꾸준한 복원이 이루어져 오늘날 우리가 만나는 아름다운 덕수궁의 모습이 탄생했습니다. 한 사람의 용기 있는 결정이 어 떻게 소중한 유산을 지켰는지를 되새기며 덕수궁을 그려보아요. 어진. 왕의 얼굴을 그린 그림. 을미사변. 1895년 10월 일본군이 경복궁에 들어와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시신을 불태운 사건. 칭호. 어떠한 뜻으로 일컫는 이름. 나라사랑 그림 그리기.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에게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남아 있는 덕수궁의 역사를 기억하며, 우리 문화재와 사적을 지켜준 마음에 감사함을 담아 그림으로 표현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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