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단이 간다!

기자단이 소개하는
보훈시설


기자단이 간다. 기자단이 소개하는 보훈시설. 제주에서 만난 백마고지 전투의 영웅 '강승우 소위상' 윤형준. 신암초6. 여름 방학을 맞이하여 제주도 여행을 하던 중 어린이 나라사랑 5호의 ‘제주에서 만나는 호국 보훈’ 기사가 생각나 공항에서 멀지 않고 방문하기 쉬운 강승우 소위상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제주시 탐라자유회관 내에 소재한 통일관 입구에는 커다랗고 웅장한 석상이 있었습니다. 6·25 전쟁에서 가장 치열했던 3대 전투 중 하나인 백마고지 전투에서 조국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백마고지 육탄 3용사 소대장 강승우 중위, 안영권 하사, 오규봉 하사입니다. 강승우 중위는 제주도 출생으로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제9사단 30연대 1중대 1소대장으로서 백마고지 전투에 참전하였습니다. 강원도 철원군에 위치한 백마고지는 ‘철의 삼각지대’라 불린 철원 평야의 요충지로서 강승우 소위는 안영권, 오규봉 하사와 함께 박격포탄과 수류탄을 들고 적진으로 돌격해 3개 진지를 파괴하였습니다. 그들의 희생으로 1중대는 백마고지를 탈환할 수 있었고,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산화했지만 조국을 지킨 애국정신과 고귀한 희생정신을 인정받아 여러 훈장과 1계급 특진을 받았고, 1973년 서울 어린이 대공원과 1990년 백마고지 전적기념관에 이어 1991년 고향인 제주도에도 강승우 소위상이 건립되었습니다. ‘백마고지의 영웅’으로 불리는 강승우 중위, 안영권 하사, 오규봉 하사는 조국을 지키겠다는 같은 마음으로 군에 입대하여 나라를 지키기 위해 열심히 싸우다 전사하셨습니다. 이처럼 조국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쳐 싸운 호국영웅들이 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고 늘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이 관광과 휴양을 위해 제주도에 방문하지만, 짧은 시간이라도 강승우 소위상에 방문하여 강승우 중위님뿐 아니라 나라를 위해 공헌하시고 희생하신 분들께 감사함을 담아 추모해 보는 건 어떨까요? 목포근대역사관 1관 탐방기. 이유건. 한솔초5. 제가 탐방한 장소는 목포근대역사관입니다. 일제 강점기 수난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는 목포근대역사관은 1관과 2관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1관은 구 일본 영사관이고, 2관은 조선 농민 수탈 기관이자 식민정책 선봉 기관이었던 동양척식주식 회사 목포지점입니다. 이 중에서 제가 소개할 곳은 목포근대역사관 1관입니다. 목포에서 가장 오래된 이 건물은 1897년 10월 목포항이 개항되고 1898년 10월 목포 일본영사관이 목포에 설치됨에 따라 지어졌다고 합니다. 2014년에 개관된 근대역사관 1관은 근대역사의 보물창고라고 불릴 만큼 목포의 시작부터 근대역사까지 모든 것을 살펴볼 수 있는 역사 전시관으로 7개의 주제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주제부터 일곱 번째 주제까지 차례대로 ‘목포진으로 출발하다’, ‘개항장으로 재출발하다’, ‘저항의 제일선이 되다’, ‘외래문화가 전파되다’, ‘대중문화의 시대’, ‘만세운동 함께해요’, ‘근대 도시 특별전’입니다. 목포근대역사관 1관 오른편에는 전쟁 준비의 흔적인 방공호를 볼 수 있습니다. 방공호는 공중에서 가해지는 폭격을 차단하기 위해 만들어진 군사 목적의 방어시설입니다. 방공호에 직접 들어가 볼 수 있었는데, 강제 동원된 사람들의 힘겨운 모습이 재현되어 있어 그분들의 아픔이 마음에 더 와 닿았습니다.아쉽게도 문화관광해설을 듣지 못했지만, 아래 해설 안내 시간에 맞추어 방문하시면 문화관광해설사님의 해설을 들을 수 있습니다. 문화관광해설사 해설 안내 오전 10:30~11:00 / 11:30~12:00 오후 13:30~14:00 / 15:00~15:30. 만해기념관에 다녀오다. 안서영. 와부초6. 세계문화유산인 남한산성에 위치한 만해기념관에 다녀왔습니다. 만해기념관은 만해 한용운 선생을 기리는 기념관으로 나라사랑의 독립정신과 철학정신을 후세에 전하여 민족자존의 정신을 겨레의 가슴에 심고자 설립하였습니다. 만해 한용운 선생은 충청남도 홍성에서 태어나 27세에 설악산 백담사에서 스님이 되었습니다. 불교계의 대중화를 위해 <조선불교유신론>과 <불교대전>을 저술하였고 불교 대중화에 앞장섰습니다. 1926년에 발표한 「님의 침묵」은 일제 치하의 암울한 시기에 우리들의 염원을 '님'이라는 동양적 정신과 한글의 운율로 나타내어 일제 침략의 비통함을 시적으로 표현한, 시문학에 있어 불후의 명작입니다. 또한 만해 선생은 민족대표 33인으로서 3·1 운동을 주도하였습니다. 독립이라는 목적을 달성하지 않으면 저항을 멈추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고, 침략 중인 일본의 야심을 폭로하였으며, 조선 독립은 신성한 역사적 의무라고 천명하였습니다. 일본의 회유와 압박을 끝까지 거부하고 독립운동을 하다 해방 1년 전 영양실조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만해기념관에서 한용운 선생의 지극했던 나라사랑 마음을 되새기고,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께 항상 감사함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나라사랑에 나이가 중요하겠어요? 김강률. 경동초4. 저는 경북고등학교에 있는 학도의용군 6·25 참전기념비를 다녀왔습니다. 경북고 학도의용군 6·25참전기념비는 6·25 전쟁 당시 조국을 지키기 위하여 희생하신 경북고 출신 참전유공자의 명예를 선양하고 나라사랑 정신을 학생 및 지역 사회에 널리 알림으로써 자긍심을 고취하기 위하여 만들어졌습니다. 학도의용군이란 무엇일까요? 학도의용군은 6·25 전쟁 당시 학생 신분으로 자원하여 국군, 미군, 유엔군에 소속되어 나라를 위해 싸운 학생들을 말합니다. 학도의용군은 대부분 나이가 14~17세에 불과했는데, 당시에는 출생신고를 늦게 하는 경우도 많아서 실제 나이는 16~19세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학생들은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난 후, ‘책 대신 수류탄하고 총을 달라’면서 자원입대하였습니다. 이들은 제대로 된 훈련도 받지 못한 채 계급장이나 군번도 없이 오로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조국을 지켜내야겠다는 일념으로 책 대신 수류탄 몇 개에다 총 한 자루만을 들고서 우리 국군과 UN군에 합류하여 전장에 뛰어들었습니다. 전장에서 싸우다 죽거나 다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으며, 포로로 붙잡힌 학생의 수도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직 어른이 아닌 학생들이 나라를 지키겠다는 굳은 마음 하나로 전쟁터로 나갔다니. 저라면 과연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무섭고 두려웠을 텐데 그러한 선택을 한 분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에는 나이가 많고 적음이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어리다고 해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까지 어리진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나라를 더욱 사랑하고 아끼는 저와 여러분이 됩시다.
arrow_upw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