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바로 알고, 더 나은 역사를 만들어주세요!”

역사 만화가 박시백

박시백 화백과 마주 앉아 이야기 나누다 보니, 우리의 역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제주도 시골 마을에서 자란 화백은 어릴 때부터 만화를 곧잘 그렸다고 합니다. 형이 공부하려고 사둔 종 이에 몰래 그림을 그리고, 못으로 종이에 구멍을 뚫은 다음 실로 동여매 그럴듯한 책까지 만들었답니다. 대학생이 되어 전혀 다른 공부를 하면서도 가슴속엔 ‘언젠가는 만화를 그리며 살 거야!’라는 다짐이 있었습니다. 온 가족이 함께 읽는 교양만화의 새 지평을 열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역사 만화가가 된 박시백 화백을 만났습니다. <어린이 나라사랑> 독자들에게 들려준 말을 곱씹어보니 “역사를 바로 알고, 더 나은 역사를 만들어 나가자!”는 당부 같았습니다.

Q. 탄탄한 이야기 구성과 세밀한 그림으로 350만 독자들의 지지를 받고 계신데, 여러 주제 중에서도 역사만화를 그려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신문에 만평을 연재하던 중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을 보고 역사에 푹 빠졌어요. 신문사를 그만두고 집에 틀어박혀 하루 12시간씩 『조선왕조실록』을 공부했고, 작품을 그리고 찢는 나날이 반복됐죠. 2003년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권을 출간한 후 10년간 조선 시대 500년 역사를 20권의 책에 담아냈습니다.
Q. 복잡한 역사를 한눈에 이해되게 펼쳐내는 힘이 대단합니다. 역사만화를 그릴 때 화백님만의 원칙이 있는지 궁금해요.
가장 신경 쓰는 건 바른 요약과 바른 소개입니다. 잘못 전달하거나 왜곡 되지 않도록 제대로 공부해야 하죠. 그래서 저는 철저히 실록(한 임금이 재위한 동안 일어난 모든 사실을 적은 공식 기록물)을 바탕으로 그렸어요. 실록과 사료를 필기해가면서 꼼꼼히 보고, 그 노트를 보면서 제가 다룰 사건과 인물 등 핵심 내용을 정리해 전체적인 구성을 짭니다.

Q. 역사를 만화로 만들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나요?
실록을 읽는 게 가장 어려웠어요. 『조선왕조실록』의 경우 태조부터 철종까지 472년간의 기록이다 보니 어마어마하게 방대한 분량이었거든요. 임금이 바뀔 때마다 다시 숲 속에 들어가 헤매는 느낌이었죠.(웃음) 노트에 정리한 뒤 두세 번은 읽어야 시대 흐름이나 주목할 점이 보이더라고요. 역사는 한 흐름으로 파악해야 앞뒤 맥락을 놓치지 않고 제대로 이해할 수 있어요. 작업을 할수록 독자들에게 제대로 소개해야겠다는 사명감이 더 생겼습니다.

Q. 1910년~1945년 일제강점기를 다룬 『35년』에는 역사책에 없는 내용이 많습니다. 낯선 이름들도 종종 등장하죠.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을 다룬 이유가 무엇인가요?
러시아에서 활동했던 조선인 여성 ‘김알렉산드라’는 아무르 강변에서 13걸음을 걸은 뒤 “지금 내가 걸은 13걸음은 조선의 13개 도다. 조선의 13도 젊은이들이여!”를 외치며 총탄에 맞아 목숨을 잃었어요. 3·1운동에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다양한 계층의 전 연령이 참가했죠. 창원 만세운동 땐 선두에 섰던 ‘김수동’이 태극기를 흔들다 일본 헌병의 조준사 격에 쓰러지자, 그 옆에 있던 ‘변갑섭’이 태극기를 받아들고 대열을 이끌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일본의 총칼에도 굴하지 않고 대한 독립을 이끌었는데, 이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그 한 분 한 분의 이름을 잊지 않고 정확히 불러드리는 게 우리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일에 제 책이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Q. 독자들이 어떤 감상을 받았으면 하셨는지요.
기록에 따르면 3·1운동 이후 총 1,548회의 집회에 204만 6,938명이 참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4만 6,306명이 수감됐고, 1만 5,849명이 다치고 7,509명이 목숨을 잃었어요. 일제강점기는 치욕적인 역사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35년이라는 아주 긴 시간 동안 이름 없는 많은 선조들이 목숨 내놓고 줄기차게 싸워 지켜낸 자랑스러운 역사이기도 합니다. 어린이 독자들도 그 사실을 꼭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Q. 올 2월 첫 출간된 『박시백의 고려사』를 통해 고려 500년 역사를 생생하게 되살려내고 계신데요. 오늘날 우리가 고려의 역사에 주목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요?
고려는 외세의 숱한 침탈에도 단호히 대응했고, 금속활자나 팔만대장경, 고려청자로 대표되는 문화적 역량도 뛰어났습니다. 또한, 고려시대에 들어서 비로소 우리나라의 존재가 지구 반대편의 세계에까지 알려지게 되었죠. 작지만 비굴하지 않고 당당했던 고려로부터 후손들이 배워야 할 게 많다고 생각해요.
Q. 앞으로의 집필 계획이 궁금합니다.
『박시백의 고려사』 1권은 후삼국시대부터 삼한 통일을 지나 광종과 성종의 이야기까지, 통일신라가 저물고 고려가 개막해 자리 잡는 첫 100년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곧 2권이 나올 예정인데요. 총 다섯 권에 각각 100년 전후의 고려사를 다루고자 합니다.

Q. 끝으로, 역사에 관심이 많은 어린이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어린이 독자들은 재미있다고 느낀 만화를 한 번으로 끝내지 않고 반복해서 보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 친구들은 저보다도 역사를 더 잘 알기도 하죠. 제 만화를 여러 번 읽으며 역사를 되새기는 독자들이 있다는 건 정말 보람 있는 일이에요. 만화를 보다가 우리 역사에 관심이 커진다면 『고려사』나 『고려사절요』,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사료도 찾아 읽어보길 권합니다. 모쪼록 다음 시대의 주역인 어린이 여러분이 올바른 역사 인식을 갖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나가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