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차정 의사, 2022년과 만나다
어린이 여러분,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소!
나는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때로는 총을, 때로는 펜을 든 박차정이오. 나는 1910년 5월 7일 부산 동래 복천동에서 태어났소. 일제의 침탈에 저항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버지와 독립운동을 한 오빠들의 영향을 받아 민족의식을 키우며 성장했다오. 1925년 동래일신여학교 고등과에 입학하여 재학 중에 독립을 갈망하는 내용을 담은 문학작품 ‘철야’ 등을 발표했소.
동래일신여학교에서 항일의식을 학생들에게 널리 알렸고, 근우회*를 통해 여성운동 지도자로 활동했으며, 라디오 방송과 여러 글을 통해 일본제국주의 침략을 규탄*했소. 1938년에 조선의용대 여자 복무단장으로 맹활약했고, 1939년 중국 곤륜산 전투에서 상처를 입은 후유증으로 1944년 5월 27일 세상을 떠났지만, 나는 우리나라를 그 누구보다도 사랑했기에 후회가 없소.
어린이 여러분, 다만 내게 남은 한이 있다면 문학의 꿈을 더 펼쳐 보지 못한 것이오. 미래에는 웹소설이라는 문학 장르가 사랑받고 있다는데, 한 번 웹소설을 보고 싶으니 내 곧 가리다!
2022년 대한민국 문학은 세계에서도 인정받고 있다고? 오호, 그중 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는 웹소설이 어린이,
청소년은 물론 성인들까지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고 들었소. 2022년 대한민국에 왔으니 웹소설부터
읽어봐야겠군! 오, 이것이 스마트폰이오! 한 손에 딱 잡히는데 그 속에는 이야기보따리처럼 수많은 이야기가
넘쳐나는구나! 표지가 곱고 인물마다 그림이 있으니 다들 좋아하겠구려. 소리로 들을 수도 있으니 마치
만물상 라디오 같기도 하오. 나 또한 당대 최고의 매체였던 라디오에서 방송을 하고 신문에 글도 실었던 사람
이오.
알다시피 나는 독립운동가이면서도 문학소녀였소. 소설 ‘철야’는 나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소설이오. 일제
강점기에 옥사*를 한 독립투사의 아들과 딸이 아버지를 잃고, 추운 겨울밤 사회의 냉대와 굶주림과 싸우면서
독립을 꿈꾸며 일제강점기 조선의 밤을 밝히는 글이라오. 그리고 ‘개구리 소리’라는 짧은 동시도 썼지.
내게는 언니가 있었소. 일찍 세상을 떠난 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동시라오. 내 작은 바람이 있다면, 나의 일생과 내가 쓴 작품들을 소재로 웹소설을 써주는 것이오. 덕분에 나의 이야기가 세상에 널리 알려질 수 있다면 가문의 영광이오. 내 비록 광복을 지켜보지 못하고 숨을 거뒀으나, 작품 속에서나마 조선의 광복 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소. 내 가족과 이웃이 모두 부둥켜안고 광복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면, 나는 더 바라는 것이 없을 것이오. 그리고 이 이야기를 통해 세상에 다시는 전쟁과 침략이 없기를 바라오. 어떻소? 내 꿈을 이루어 줄 수 있겠소?
어린이 여러분! 내가 지킨 나라가 선진국이 되어, 이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냈으니 참으로 기쁘고 감사하오. 앞으로도 우리나라를 잘 이끌어 다시는 전쟁의 슬픔과 아픔이 없도록 나라를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오!

박차정 의사는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고, 박 차정 의사의 숭고한 넋을 기려 생가를 복원하 였다. 박차정 의사의 훈장, 신문 조서*, 부모님 사 진 등이 전시되어 있다.
o 위치 부산 동래구 명륜로98번길 129-10 박차정 생가
o 관람 화~일요일 10:00~17:00(점심시간 12:00~13:00)
o 휴관 매주 월요일, 1월 1일, 명절 연휴, 임시공휴일
o 문의 051-556-0527
사진 출처 : 부산광역시교육청 홈페이지

박차정 의사의 묘소에는 ‘총을 들고 일제와 담대
하게 싸웠던 독립운동가 박차정을 기억하길’
이라고 적힌 푯말이 있다.
o 위치 경남 밀양시 부북면 후사포리 송악마을 공동묘지
사진 출처 : 밀양시청 홈페이지
*근우회 : 1927년 5월에 조직된 독립운동 및 여성운동 단체
*규탄 : 잘못이나 옳지 못한 일을 잡아내어 따지고 나무람
*옥사 : 감옥살이를 하다가 감옥에서 죽음
*추서 : 큰 공을 세워 국민의 존경을 받으며 덕망을 갖춘 사람에게 시간이 지난 뒤 훈장 등을 수여하는 것
*신문 조서 : 신문받은 사람의 진술을 주로 하여, 신문의 경위를 기록한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