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해수호의 날이란?
북한의 기습 공격으로 ‘제2연평해전’,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전’이 발생했습니다. 이에 희생된 서해수호 55용사를 기리기 위해 서해수호의 날을 지정했습니다. 희생정신을 잊지 않고, 국토 수호 의지를 다지기 위함입니다.

6·25 전쟁 이후 북한의 공격으로 서해를 지키다 전사자가 발생한 사건 수이며, ‘제2연평해전’,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전’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매년 3월 넷째 주 금요일이 서해수호 날입니다. 서해의 별이 된 서해수호 55용사를 기억하는 법정 기념일입니다.

앞서 언급한 3건의 사건에서 희생된 용사들의 수입니다.

서해수호의 날은 올해 7회를 맞았습니다. 2016년도부터 매해 55명의 용사들을 추모하는 행사를 갖고 있습니다.

제2연평해전 발생일입니다. 북한 경비정*이 기습 공격한 첫 번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천안함 피격이 발생한 날입니다. 가장 많은 전사자가 발생한 사건이기 때문에 이 사건을 기려 서해수호의 날을 3월 넷째 주 금요일로 지정했습니다.

연평도 포격전 발생일입니다. 천안함 피격 이후 얼마 되지 않아 발생한 사건이라 국민들의 충격이 컸습니다.
제2연평해전

전국이 한일 월드컵 열기로 가득했던 2002년 6월 29일 오전 9시 54분, 북한의 경비정 2대가 서해를 침범했습니다. 이에 해군 고속정*이 출동했는데 북한 측은 우리 참수리 357호정을 향해 선제 포격*을 가했습니다. 기습 포격으로 치명적 피해를 본 상황에도 해군 장병들은 목숨을 바쳐 서해를 지켜냈습니다. 근처에 있던 다른 군함들도 전투에 참여해 대응 사격을 실시했고, 약 25분 만에 크게 격파된 북한 경비정은 결국 물러났습니다. 우리 해군은 제2연평해전에서 승리했으나 참수리 357호정은 바닷속으로 가라앉았고, 해군 용사 6명 전사, 19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우리 해군은 군함에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한 여섯 용사들의 이름을 붙여 그들이 치른 숭고한 희생을 기리고 있습니다.
천안함 피격
2010년 3월 26일 밤 9시 22분, 백령도 근처에서 우리 바다를 지키고 있던 천안함이 북한 해군 잠수정*의 어뢰(폭탄)에 공격당해 배가 양쪽으로 절단되며 침몰한 사건입니다. 공격 당한 직후 인근에 있던 배들이 구조 작전을 펼쳐 104명의 승무원 중 58명이 구조되었으나 46명은 전사했습니다. 이후 천안함 수색작전 과정 중 배가 침몰되고, 한주호 준위가 순직하는 등 10명의 사망·실종자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4월 15일, 바닷속에 있던 천안함의 함미(함선의 뒷부분)를, 4월 24일에는 함수(함선의 앞부분)를 끌어 올렸습니다. 4월 29일, 평택 2함대사령부에서 영결식을 한 뒤, 대전 현충원에 천안함 희생 장병 46명을 안장했습니다.
연평도 포격전

2010년 11월 23일 오후 2시 34분, 서해5도 중 하나인 대연평도에 북한군의 포격이 시작되었습니다. 선전포고도 없이 시작된 이 사건은 1953년 정전협정 이래 최초로 발생한 민간인 거주 구역에 대한 공격이었습니다. 굉음과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고, 당시 하교 중이던 연평초등학교 학생 등 주민들도 위험에 노출되었지만 대부분 군인의 안내에 따라 대피소로 피신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군도 북한군 기지를 향해 대응 사격을 가했고, 오후 3시 41분경이 되어서야 교전이 중지되었습니다. 북한군이 발사한 포탄들로 군 막사와 인근 숲 등이 불에 탔고, 해병대 2명이 전사, 16명이 중경상을 입었습니다. 일부 포탄은 민간 건물로 떨어져 2명의 민간인 사망자와 다수의 부상자도 발생했습니다.
*경비정 : 바다를 지키는 작고 빠른 함정
*고속정 : 속력이 빠른 경비 임무를 수행하는 함정
*포격 : 대포를 쏨
*잠수정 : 항해 속도가 빠른 소형 잠수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