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무언가를 결정하면 후회하지 않는다.
■ 의견이나 아이디어를 내놓는 것에 자신 있다.
■ 완벽주의적 성향이 강한 편이다.
■ 창의력과 상상력이 풍부하다.
■ 친구가 고민을 털어놓으면 공감보다 해결방법을 찾아준다.
■ 감정보다는 이성적으로 판단한다.
■ 자기 생각을 고집하는 편이다.
■ 어떤 일이든 기회가 생기면 놓치지 않는다.
■ 문제해결능력이 뛰어나다.
■ 언제나 일정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 약속 시간에 늦은 적이 없다.
■ 남의 잘못을 비판하는 것을 싫어한다.
■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는 것을 싫어한다.
■ 새로운 분식집보다는 원래 가던 곳이 편하다.
■ 친구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들리면, 친구의 이야기부터 들어준다.
■ 원리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 독립심이 강하고 외로움을 잘 타지 않는다.
■ 사람과 친해지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자신감과 자부심을 갖고 있다.
■ 화가 날 때 화를 내기보다 참는 편이다.


■ 조화로운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편이다.
■ 다른 사람의 입장을 잘 살핀다.
■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다.
■ 소문을 믿지 않는 편이다.
■ 봉사활동을 참여하는 것을 좋아한다.
■ 길을 물어보는 사람이 있으면 바쁜 일이 있어도 꼭 알려준다.
■ 공감 능력과 리액션이 뛰어나다.
■ 감수성이 풍부해 슬픈 장면을 보면 눈물을 흘린다.
■ 책임감이 강해 맡은 일을 열심히 한다.
■ 남의 고민을 잘 들어준다.


■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편이다.
■ 어떤 상황이든 적응을 빨리한다.
■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을 싫어한다.
■ 위기 대처 능력이 뛰어나다.
■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다.
■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는 것이 가능하다.
■ 관심을 받는 것을 좋아한다.
■ 무엇을 하든 평균 이상을 해낸다.
■ 자존감이 높고 주관이 뚜렷하다.




o 성공 확률이 낮더라도 대담하게 자신의 생각을 실현했어요.
o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지휘해 전세를 역전시켰어요.
더글러스 맥아더는 6·25 전쟁에서 유엔군을 지휘했습니다. 전쟁이 발발한 당시, 북한군의 기습 공격으로 무방비 상태였던 국군은 순식간에 서울을 빼앗기고 낙동강까지 밀려났습니다. 이때 더글러스 맥아더는 낙동강에서 전면전을 펼치는 대신 배를 이용해 인천에 상륙해서 북한군의 뒤를 공격하는 ‘인천상륙작전’을 계획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밀물과 썰물이 심한 인천의 지형 탓에 작전 성공이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더글러스 맥아더는 성공 확률이 낮은 만큼 적군도 쉽게 예상하지 못할 테니 오히려 기습 효과를 노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은 성공했고, 남쪽 지역과 수도 서울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o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운 충직한 군인이었어요.
o 단신으로 적진에 돌진할 만큼 강한 용기를 가졌어요.
김재호는 육군에 입대한 후 수도고지 전투에 참전하였습니다. 수도고지 전투는 1952년 7월부터 10월까지 수도고지에서 국군 수도사단과 중국군이 군사분계선 설정에 대한 휴전협상의 주도권 장악을 목적으로 전개한 고지 쟁탈전이었습니다. 1952년 10월 6일에 중국군 전차 4대가 포격을 가하며 국군을 공격했는데, 김재호는 전차포 사격으로 잠시 정신을 잃었습니다. 전우들이 모두 전사한 가운데 홀로 정신을 차린 김재호는 수류탄을 투척했고, 당황해 흩어지는 적에게 사격을 가했습니다. 단신으로 적진에 돌진해 중국군을 무찌른 공적으로 을지무공훈장을 받았으나, 안타깝게 정전협정 체결을 12일 앞두고 1953년 금성지구 전투에서 전사했습니다.


o 급박한 순간에도 생명의 소중함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o 민간인을 구출하려는 굳은 신념으로 끝까지 포기하기 않고 설득했어요.
현봉학은 민간인의 신분으로 전쟁터에서 통역을 맡아 국군의 승리에 일조했습니다. 그의 활약은 흥남 철수 작전에서도 이어졌습니다. 국군과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뒤 북진을 계속했으나, 중국군의 참전으로 전세는 역전되었습니다. 결국 1950년 12월 15일 10만여 명에 달하는 미 10군단의 병력을 해상으로 철수시키는 흥남 철수 작전이 펼쳐집니다. 급박한 상황인 만큼 민간인 구출은 도저히 불가능했습니다. 그런데 현봉학은 군단장인 알몬드 소장을 끝까지 설득했고, 수송선에 실은 군수품을 버리는 대신 무려 10만여 명의 민간인을 구출했습니다.


o 취재를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는 실행력을 지녔어요.
o 위험한 전장을 누비는데 전혀 두려움이 없었어요.
마거릿 히긴스는 <뉴욕 헤럴드 트리뷴>의 특파원 자격으로 6·25 전쟁의 참상을 전 세계에 전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북한군에게 점령당한 통영을 탈환하기 위한 ‘통영 상륙 작전’에서 우리나라 해병대의 용맹함을 알렸습니다. 이 취재에서 ‘귀신 잡는 해병’ 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이후 대한민국 해병대의 자랑스러운 별칭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리고 낙동강 방어선 전투, 인천상륙작전, 장진호 전투 등을 취재하며, 모든 취재 기간을 최전선에서 보냈습니다. 취재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온 마거릿 히긴스는 <War in Korea>를 저술하고, 기자에게 큰 명예 중 하나인 퓰리처상(미국의 가장 권위 있는 보도·문학·음악상)을 수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