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이 여러분,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소!
나는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윤봉길이오. 난 지금으로부터 113년 전인 1908년에 충청남도 예산에서 태어났소. 어릴 적 서당에서 전통 교육을 받으며 조국 독립을 꿈꿨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국민들이 깨어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랑방에서 아이들에게 한글과 독립의 필요성을 가르쳤소.
이후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위해 23살 되던 1930년 중국으로 향했지.
이듬해 백범 김구 선생을 만나 독립운동의 길을 찾던 중, 1932년 4월 29일 상해 홍구공원에서 열리는 일왕의 생일 축하식에 우리나라와 중국 침략의 원흉들이 모인다는 사실을 알게 됐소. 그리고 치밀한 준비 끝에 물통 폭탄으로 그들을 쓰러트릴 수 있었소. 비록 일본군에 잡혀 25세의 꽃다운 나이에 순국했지만, 지금도 내 선택에 전혀 후회 없소. 우리나라의 독립에 내 한몸 바칠 수 있었으니 말이오. 어린이 여러분도 우리나라의 발전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지 궁금한데, 어디 한 번 내가 직접 가봐야겠소!
여기가 2021년 대한민국의 교실이오? 요즘에는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들었다던데, 과연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고 있구려! 갑자기 여러분 앞에 나타나서 놀랐다면 미안하오. 우리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인재들이 어떻게 공부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참을 수 없었다오. 그래, 오늘은 무엇을 공부하고 있었소? 오, 마침 나와 상해 홍구공원 의거에 대해 배우고 있었군! 이렇게 열심히 독립운동에 대해 공부한 보답으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들려줄까 하오. 백범 김구 선생과 나의 회중시계에 대한 사연이오.
상해 홍구공원 의거가 있던 1932년 4월 29일, 나와 김구 선생은 마지막 아침식사를 나눴소. 식사가 끝날 무렵, 김구 선생의 2원짜리 낡은 은색 회중시계가 눈에 띄었소. 앞으로도 독립운동에 앞장서야 할 분에게 어울리지 않는 시계였소. 반면 곧 의거에 나설 내 시계는 얼마 전 6원에 구입한 금색 회중시계였소. 나는 내 시계를 내밀며 김구 선생에게 말했소.
“이 시계는 6원을 주고 샀는데
선생님 시계는 2원짜리니, 제 것하고 바꾸시지요.
제 시계는 앞으로 한 시간밖에는 쓸데가 없습니다.”
나는 김구 선생의 회중시계를 품고 상해 홍구공원으로 향했소. 덕분인지 성공적으로 의거를 치를 수 있었지. 지금 내 품에 있는 이 시계가 바로 김구 선생의 회중시계라오. 그런데 여러분, 다들 네모난 상자를 꺼내고 무얼 하는 거요? 요즘에는 스마트폰이라는 걸로 중고거래를 할 수 있단 말이오? 그렇다면 오래 전 2원이었던 이 김구 선생의 시계는 얼마쯤 하오? 참으로 궁금하구만. 그것만 알아보고 나의 6원짜리 회중시계를 구경하러 가는 건 어떻소?
이곳이 바로 내가 김구 선생에게 준 회중시계가 전시돼 있다는 백범김구기념관이구려. 오는 길에 보니, 대한민국이 놀랍게 변했소. 요즘에는 선진국으로 성장했다지? 조상들의 독립운동으로 일으킨 나라가 이렇게나 발전했다니, 무척 감격스럽소. 어린이 여러분도 치열했던 오래 전의 독립운동을 꼭 기억해 주고, 앞으로도 배움에 정진해서 우리나라를 잘 이끌어 주길 바라오. 하늘에서 여러분들의 활약을 지켜보고 있겠소!

윤봉길 의사가 건넨 백범 김구 회중시계
(국가등록문화재 441호)




윤봉길 의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창건된 충의사 내에 마련된 전시관. 윤봉길 의사가 일본군에 체포될 당시 지니고 있던 김구 선생의 은색 회중시계(보물 568-2호)를 포함한 유물 56점이 전시돼 있다.
o 홈페이지 www.yesan.go.kr/tour/sub01_01_01_03_01.do
o 위치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덕산온천로 183-5
o 문의 041-339-8233


우리나라 독립운동을 주도한 백범 김구 선생의 발자취가 담긴 전시관. 김구 선생이 서거 당시까지 애용하던 윤봉길 의사가 건넨 금색 회중시계(국가등록문화재 441호)와, 김구 선생과 관련된 다양한 자료를 살펴볼 수 있다.
o 홈페이지 www.kimkoomuseum.org
o 위치 서울특별시 용산구 임정로 26
o 문의 02-799-3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