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간다면 친구 유관순의 손에 뭘 선물하고 싶은가요?


유관순은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에서 3남 2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어요. 어린 시절 머리가 총명해 아무도 가르치지 않았음에도 한글을 혼자 익혀서 성경을 읽고, 줄줄 욀 정도였어요. 그리고 링컨이나 잔 다르크의 위인전을 읽으며 애국심을 키웠대요. 당시는 여자아이가 초등학교도 다니기 어려운 시절이었어요. 그런데 유관순을 옆에서 지켜본 미국인 선교사가 서울의 이화학당으로 유학을 보내주었어요. 역시 유관순은 특별한 인물이었던 것 같아요.

성격이 활발했던 유관순은 어릴 적부터 ‘대장’이 되고 싶었어요. 그건 남자들이나 하는 거라고 주위에서 말해도, “여자가 대장이 되지 못한다는 법이 어디 있냐”며 대장이 되겠다고 했어요. 남자아이들의 놀이였던 돌을 세워놓고 쓰러뜨리는 비석 치기도 마다하지 않았어요. 어른들은 유관순을 보고 “남자로 태어났으면 장군감”이라고 말하곤 했어요. 유관순은 장난도 꽤 심했다고 해요. 이화학당에 들어간 유관순은 계단을 내려올 때 층계를 이용하지 않고 난간에 걸터앉아 미끄럼을 타고 내려오기도 했대요.


유관순은 봉사 정신도 뛰어났어요. 여자 선생님이나 친구의 빨래를 도맡아 해주었고, 손수 뜨개질로 모자를 만들어 조카에게 선물하기도 했어요. 만세운동으로 인해 감옥에 있을 때는 함께 지내던 사람의 아기 기저귀를 자기 몸에 감아 말려주기도 했대요.

유관순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적극적으로 참여했어요.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이화학당의 교장은 교문을 걸어 잠그고 막아섰지만, 유관순과 친구들은 학교 뒷담을 넘어 거리로 나갔어요. 일제가 강제로 모든 학교의 문을 닫게 하자, 고향으로 내려갔어요. 고향에 내려간 유관순은 병천 아우내 장터에서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눠주고 근처의 학교와 교회 등을 찾아가 만세운동에 참여하도록 권유했어요.
시위 당일, 장터에 나간 유관순은 시위대의 맨 앞에 서서 만세를 외치다 경찰에 붙들렸어요. 이때 아버지와 어머니가 일본 군인의 총탄에 숨을 거뒀어요. 재판을 받을 때도 유관순은 죄를 지은 자는 바로 너희들이라며 당당한 모습으로 맞섰다고 해요. 그러나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죄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어요.
유관순은 서대문형무소 지하감옥에 갇혀서도 쉴 새 없이 만세를 외쳤어요. 그럴 때마다 밥을 굶기고, 발로 차고, 때렸어요. 그러나 유관순은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어요. 심한 고문과 영양실조,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는 슬픔과 분노 때문에 유관순의 몸은 나날이 쇠약해졌고, 결국 열여덟의 나이로 순국해요.


유관순은 어떻게 그렇게 일제의 총칼 앞에서 두려움 없이 만세를 불렀을까요? 어떻게 그렇게 당당하고, 대담하게 일본 재판부 앞에서 행동했을까요? 유관순이 죽음을 각오하고 지켜내려고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애국이라는 것은 나이나 성별, 학벌 같은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었어요. 가슴속에 가득한 정의감과 신념, 그리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용기 같은 것들이 유관순을 만세운동으로 이끈 것이지요. 유관순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어린이들도 많은 용기를 얻길 바라요.
참고 : 천안시 유관순열사기념관 홈페이지, 도서 <궁금해요, 유관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