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이정표를 꿈꾸다

나와 가장 닮은 독립운동가는 누구?

만약 내가 일제강점기 시기에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라면?

나와 닮은 독립운동가는 누구이고, 어떤 점이 닮았는지 재밌는 심리테스트를 통해 알아보아요! 

먼저 아래의 질문에 답을 해본 뒤 나온 점수의 합을 체크해 주세요.  

가장 높은 점수가 나온 유형에 해당하는 인물이 바로 나와 닮은 독립운동가입니다! 

■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계획을 세운다
■ 몸으로 부딪히는 일보다 머리를 쓰는 일이 더 편하다
■ 약속 시간에 상대보다 항상 일찍 도착한다
■ 무언가를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 남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을 좋아한다
■ 무언가를 할 때 빠른 속도로 끝낸다
■ 책을 읽는 것보다 산책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 운동을 자주 한다
■ 실외에서 활동하는 것을 좋아한다
■ 말하기 능력이 뛰어난 편이다

■ 물에 빠진 사람을 보면 구조를 위해 뛰어들 수 있다
■ 잘못을 저지르면 용서를 구하고 책임진다
■ 불만이 있으면 솔직하게 항의한다
■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을 보면 소리칠 수 있다
■ 사나운 개를 발견했을 때 지나쳐 걸어간다
■ 시험 성적표가 나오면 바로 확인한다
■ 친구의 뒷담화를 들으면, 나서서 그 친구의 편이 되어준다
■ 아픈 곳이 생기면 바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는다
■ 이상한 소리가 나면, 그곳에 가서 소리가 나는 이유를 확인한다
■ 아프거나 쓰러져 있는 사람을 보면 달려가 도와준다

■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면 쉽게 친해진다
■ 미소와 웃음을 지을 때가 많다
■ 사소한 일에 신경 쓰지 않는 편이다
■ 다른 사람들보다 주위에 친구가 많다
■ 앞으로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 친구와 싸웠을 때 잘 화해한다
■ 운은 스스로가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아침에 새로운 날을 기대하며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 외롭다고 느끼지 않는다
■ 변화는 새로운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 높은 성취 목표를 가지고 있다
■ 할 말이 있으면 언제나 당당하게 말한다
■ 승부욕이 강한 편이다
■ 활동성이 높은 운동을 좋아한다
■ 하루가 짧다고 생각한다
■ 화를 잘 참지 못하는 편이다
■ 두 가지 약속 중 먼저 한 약속이 더 중요하다
■ 취미가 많은 편이다
■ 성격이 여유롭기보다 급한 편이다
■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o 사람들이 힘을 모을 수 있도록 논리적인 사고력으로 독립운동을 주도했어요.
o 항상 예측하고 고민하여 의거 활동이 성공할 수 있도록 지도했어요.
o 앞에 서서 조직원들이 두려움을 떨쳐내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었어요.

김구는 청년시절부터 동학농민혁명을 참여하며 일본에 맞설 만큼 강인함을 가졌던 인물입니다. 3·1운동의 여파로 상해로 망명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초대 경무국장을 지냈고, 임시정부의 주석을 맡으며 많은 독립운동가들을 이끄는 지도자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리고 ‘한인애국단’을 조직해 ‘이봉창, 윤봉길 의사 의거’를 철저히 계획하며 간절히 원하던 조선 독립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간절히 바라던 광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반도가 남북으로 갈라지자 빠른 판단력으로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해 남북협상을 추진했는데, 이를 반대하던 세력에게 암살당하며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o 일본으로부터 자유를 탄압받는 국민들을 위해 정의롭게 싸웠어요.
o 일본의 부당한 대우에 맞서고자 ‘하얼빈 의거’를 결행했어요.
o 죽음을 앞두고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가졌어요.

안중근은 ‘을사늑약’ 체결에 분노하여 항일독립운동의 기지인 ‘삼흥학교’를 세우며 인재양성을 위해 앞장섰습니다. 이후 러시아 연해주로 건너가 의병 조직에 참여해 치열한 항일투쟁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동지 11명과 함께 ‘동의단지회’를 결성한 뒤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며, 나라의 원수를 처단했습니다. 사실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의 얼굴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하얼빈 의거’는 성공할 가능성이 작았지만 안중근의 추진력과 강한 용기 덕분에 결행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안중근은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하얼빈 의거로 새로운 세상이 오기를 바라며 죽음을 받아들였고,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o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동화를 구연하고 강연회를 열었어요.
o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도 미소와 웃음을 잃지 않았어요.
o 나라의 미래인 아이들을 위한 글을 특유의 감성으로 표현했어요.

방정환은 사교성이 높아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경성청년구락부’를 조직해 <신청년>이라는 잡지를 창간하고, 공연 및 순회 강연을 돌면서 언론, 출판, 문학인으로서 민족계몽운동에 앞장섰습니다. 그리고 미래를 이끌어나갈 아이들을 위해 1921년에 ‘어린이’라는 말을 공식화하며, 마침내 1923년 5월 1일을 제1회 ‘어린이날’로 제정했습니다. 이후에도 어린이 운동단체 ‘색동회’를 창립해 국내 최초 어린이 잡지 <어린이>를 창간하며 꾸준히 어린이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비록 지병으로 생을 마감했으나, 마지막 순간까지도 ‘어린이를 두고 가니 잘 부탁하오’라는 유언을 남기며 자신보다 남을 배려하는 인물이었습니다.

o 특유의 승부욕과 추진력으로 일본군과의 수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어요.
o 힘든 전투 상황에서도 쉽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했어요.
o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고, 절대 실패하는 전투가 없었어요.

김좌진은 집안의 노비를 해방시켜주고 무상으로 토지를 분배해줄 만큼 실행력을 지닌 인물이었습니다. 더불어 타고난 활동성으로 육군무관학교를 졸업 후 ‘호명학교’를 설립하고 ‘대한협회’에 가입하며 애국 계몽운동을 전개했습니다. 그런데 독립군사관학교를 설립하기 위해 자금을 모았던 것이 원인이 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3년간 투옥생활을 했고, 이를 계기로 항일투쟁에 뛰어들었습니다. 이후 독립 군대 ‘북로군정서’의 총사령관이 되어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많은 승리를 거뒀고, 그 중 최대의 전과를 거둔 ‘청산리대첩’이라는 업적을 남겼습니다. 김좌진은 전투뿐 아니라 독립군을 양성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 나갔으나 안타깝게 피살당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TOP
SNS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