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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신채호 선생 생가지를
탐방하다

이유건 한솔초5

단재 신채호 선생 생가지

“일제가 이 땅을 지배하는 한 어느 방향으로든 허리를 굽히지 않겠다.”라며 옷이 다 젖어도 몸을 꼿꼿이 세우고 세수를 하였다는 일화를 들어 본 적 있으신가요? 이 일화의 주인공은 바로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 역사학자 단재 신채호 선생님입니다. 신채호 선생님의 호는 단재입니다. 단재는 일편단심이라는 뜻으로, 선생님은 한 번 옳다고 믿은 일에는 절대 뜻을 굽히지 않았다고 합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 생가지

단재 신채호 선생님의 생가지를 소개하기 전에 신채호 선생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선생님은 1880년 11월 7일 대전시 중구 단재로 229번 길에서 태어나셨고 이곳에서 여덟 살까지 어린 시절을 보내셨다고 합니다. 어려서 할아버지께 한학을 익혔고 10세에는 한시를 지었으며, 19세에는 조선의 국립대학교인 성균관에 입학하였습니다.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관직에 나갈 뜻을 포기하고 낙향하셨으며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에 비판의 글을 써 민족의식 높이고자 노력하셨습니다. 한일합방이 되던 1910년 4월에 망명길에 올라 신민회 회원들과 함께 독립운동에 투신하였으며, 1928년 대만에서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뤼순 감옥에 수감되었습니다. 복역 중 뇌일혈이라는 병에 걸리셨고, 보증으로 풀려날 수 있었으나 보증인이 친일파라는 이유로 거부하고 끝내 57세 나이로 감옥에서 순국하셨습니다. 죽음도 꺾지 못하는 신채호 선생님의 강직함이 대단하다고 생각됩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 생가지

그럼 이제, 신채호 선생님의 생가지를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님의 생가지는 곳간채와 안채로 나뉘어 있습니다. 생가지 내부의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나지막한 산에 둘러싸여 있는 생가지에서 포근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안채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면 글을 읽고 있는 신채호 선생님의 어린 시절 모형이 보입니다. 그리고 선생님 방 앞으로 어린 시절 선생님께서 지으신 시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 생가지
단재 신채호 선생 생가지

신채호 선생님의 생가지 왼편에는 신채호 선생님의 동상이 있습니다. 묵념으로 잠시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봅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님 생가지 주차장 옆에는 '단재 홍보관'이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시면 해설사님의 설명을 들을 수 있고, 신채호 선생님의 업적도 살펴볼 수 있으니 개관 시간을 참고하여 방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올곧은 정신으로 이름이 높은 신채호 선생님의 생가지 방문을 통해 우리의 역사와 나라사랑을 함께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독립운동가 신채호 선생님의 생가지에서 이유건 기자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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