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단이 간다!

기자단이 소개하는 보훈시설


학도병의 고귀한 희생, 장사상륙작전. 김예준. 영덕야성초 6학년. 제가 취재한 현충시설은 경상북도 영덕군 남정면에 위치한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관입니다. 제가 이 기사를 쓴 까닭은 6·25 전쟁 중에 있었던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그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북한군의 시선을 동해로 돌린 장사상륙작전이 있었다는 사실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문산호에 탄 학도병 772명은 북한군을 견제하기 위해 거센 비바람과 파도를 뚫고 장사 앞바다에 도착하였습니다. 북한군의 총알과 포격이 빗발 쳤지만 학도병들은 밧줄로 배와 땅을 연결해 장사에 상륙하고 치열한 전투를 벌여 북한의 주 보급로인 국도 제7호선을 봉쇄하였습니다.많은 학도병들의 희생과 노력으로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해서 UN군과 국군들이 북한군들을 물리치고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작전 중에 많은 학도병들이 전사하고 6일간 치열한 전투를 마치고 철수하는 과정에서 함께 철수하지 못하고 남겨진 학도병이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가슴 아팠습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해준 학도병의 희생을 우리는 항상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잊혀진 영웅이 아니라 우리 기억 속에서 영원히 기억되는 영웅들이라고 학도병님들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많은 친구들과 형, 누나들이 찾아와서 보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좋겠습니다.단재 신채호 선생 생가지를 탐방하다. 이시원. 한솔초 5학년.안녕하십니까? 저는 어린이 나라사랑 시원 기자 입니다. 저는 단재 신채호 선생님께서 태어나 8살 때까지 어린 시절을 보낸 신채호 선생님의 생가지에 다녀왔습니다. 신채호 선생님은 대전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이며, 역사학자, 언론인으로 신채호 선생님 생가지는 신채호 선생님의 업적과 정신을 알리고자 복원되었습니다. 신채호 선생님의 생가지는 1991년 7월 10일 대전 광역시 기념물 제26호로 지정되었고, 입구에 이를 알리는 기념물 지정비석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님 생가지는 곳간채와 안채로 이루어져 있고, 안채 오른편으로 신채호 선생님이 글을 읽고 계신 모습이 모형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신채호 선생님은 어려서부터 한시에 특출한 재능이 있었다고 합니다. 선생님께서 어릴 적 지은 시를 잠깐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무엇에 관한 시일까요? 높게 혹은 낮게 날림은 바람의 세고 약함에 있고 멀리 혹은 가까이 날림 은실의 길고 짧음에 있구나. 어린 단재의 시. 이 시의 주제는 바로 ‘연 날리기’입니다. ‘연’이라는 글자를 사용하지 않고 연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 아주 대단하게 느껴집니다.단재 신채호 선생님 생가지 앞쪽에는 단재 홍보관이 있습니다. 해설사님의 설명도 들을 수 있고, 신채호 선생님의 일생과 업적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인데요. 역사가 왜 중요하고, 우리가 역사를 왜 바로 알아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 습니다. 대전을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교훈 가득한 신채호 선생님 생가지를 적극 추천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단재 신채호 선생님 생가지에서 이시원 기자였습니다. 감사합니다.나야 대령을 아시나요? 김강률. 경동초 4학년.나야 대령 기념비는 고(故) 나야 대령의 희생정신을 기리고자 만들어진 비석입니다. 나야 대령 기념 비는 대구광역시 수성구 범어동 산 156번지에 위치해 있습니다. 장소에 도착하여 산을 오르니 나야 대령 기념비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나야 대령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한국 사람은 아닙니다. 그는 인도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인도인인 그의 기념비가 한국에 있고 또 현충시설로 지정된 걸까요? 나야 대령은 6·25 전쟁 당시 국제 연합 한국위원단 인도 대표로 참여한 군인 이었습니다. 나야 대령은 낙동강 전투가 치열했던 1950년 8월 12일 경북 칠곡군 왜관 근처에서 지뢰 폭발로 순직하였습니다. 전쟁 중이라 고국으로의 송환이 어려웠던 나야 대령의 시신은 1950년 8월 13일 대구 수성구 범어동 산 156번지, 속칭 주일골에서 화장되었고, 1950년 12월 7일, 같은 장소에 나야 대령 기념비를 건립했습니다.나야 대령 순직 당시, 고국 인도에는 결혼한 지 3년 된 비말라나야 여사와 2살 된 딸 파바시 모한이 있었습니다. 나야 대령이 순직하고 한국을 몇 차례 방문한 비말라나야 여사는 ‘남편 곁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기고 2011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따님 파바시 모한 여사가 그 뜻을 수성구청에 전해 왔고, 2012년 8월 24일 영현안장식을 거행하게 되었습니다. 백범김구기념관에서 느낀 나라사랑. 이주원. 삼성초 6학년. 백범김구기념관은 2002년 10월 22일 백범 김구 선생님의 삶과 사상을 알리고 발전시키기 위해 서울특별시 용산구 임정로 26에 개관하였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중앙홀에서 가장 먼저 백범 좌상을 볼 수 있습니다. 김구 선생님께서 태극기 아래 앉아 계신 모습의 조각상입니다. 백범 선생님의 결연한 의지를 느낄 수 있어 가슴 뭉클 했습니다. 이외에도 총 2층에 걸쳐 김구 선생님 조각상과 다양한 모습의 태극기, 관련된 글들, 친필,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1층 전시관 에서는 김구 선생님의 어린 시절과 스승, 사상, 수감 및 탈옥 등의 기록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는 김구 선생님의 이름들과 그 뜻을 알 수 있는 공간도 있습니다. 2층 전시관에는 가장 먼저 임시정부에 대한 내용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임시 정부의 사람들 사진 중 이름이 없는 분들을 보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김구 선생님과 두 아들에 관한 이야기에 서는 아버지와 아들의 마음을 떠올리며 감동을 받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추모 공간에는 김구 선생님의 글들이 전시되어 있고, 김구 선생님의 묘를 창문 너머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밖으로 나가 직접 방문해 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김구 선생님에 대한 영상도 나오는데 꼭 끝까지 시청해 보길 바랍니다. 그 뒤에는 김구 선생님께서 안두희의 총에 맞을 당시 입고 계셨던 옷과 조각상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평소 김구 선생님의 생애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 이라면 꼭 방문하여 역사적 자료, 전시품 등을 둘러보면서 역사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길 바랍니다. 6·25 전쟁의 낙동강 방어선을 지킨 칠곡호국평화기념관. 이채윤. 내포초 4학년. 어린이날 연휴를 맞이하여 아버지가 계신 대구에 갔습니다. 할아버지께선 어린이 나라사랑 기자단이 된 저의 소식을 들으시곤 축하해주시며 대구 인근의 칠곡호국평화기념관을 방문할 것을 추천해 주셔서 다녀왔습니다. 칠곡호국평화기념관은 6·25 전쟁의 방어선이었던 낙동강 유역을 지키고, 불리했던 전세를 역전시킨 대한민국 국군 용사를 위한 곳이라 하셨습니다. 저는 자연스레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호기심이 이끈 칠곡호국평화기념관은 전쟁의 무서움과 평화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넓은 뜰에 6명의 동상과 여성간호장교부터 학도병, 지게부대까지 낙동강 최전방에서 사선을 넘나들며 나라를 지킨 사람들을 기리기 위한 탑이 있습니다. 큰 공원을 뒤로하고 건물로 들어가면 구멍 난 철모가 있는데, 이 조형물은 낙동강 방어선 전투를 상징 한다고 합니다. 나라를 위해 기꺼이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건물을 둘러보았습니다. 칠곡호국평화기념관은 다양한 체험시설이 있고, 당시 긴박했던 왜관 철교 폭파 등 6·25 전쟁의 이모저모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어 경험하며 배울 수 있는 유익한 곳입니다. 특히 마지막 관의 파노라마는 우리나라 지도를 통해 6·25 전쟁의 전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파노라마를 보고 있으니 저도 덩달아 긴장이 되었습니다.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여 북한군이 물러가며 태극기가 펄럭이는 장면에선 가슴 벅참이 느껴지며 목숨을 바친 장병들에게 감사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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